[Economy Insight 2010년 7월호] [포럼] 괴짜 CEO가 만든 천국의 일터
2010.07.26 5216
매체: Economy Insight 7월호
제목 : [포럼] 괴짜 CEO가 만든 천국의 일터
발간사항: Economy Insight, pp.134~136
김현성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대량 리콜 파문으로 도요타자동차가 최근 미국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유토피아 경영’으로 세상의 시선을 끌고 있는 일본 기업도 있다. 2004년부터 일본은 물론 한국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전기설비 제조 중견 기업 미라이공업이다. 누구나 책상 위에 하나씩 놓여 있을 법한 것으로, 칼끝이 무뎌지면 끝부분만 살짝 도려내서 사용하도록 하는 사무용 커터 칼을 개발한 바로 그 기업이다. 일본 중견 기업의 대명사인 자전거 업체 시마노처럼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아니다. 미라이공업은 일본 기업의 강점인 기술력이 아니라, 독특한 인본주의 경영과 기업 문화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미라이공업은 △연간 휴일 180일(2008년) △근무 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4시45분 △잔업 금지 △목표 업무량 없음 △육아 휴직 3년 △5년마다 모든 직원 해외여행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즉, 많이 놀게 해주면서도 업계 상위의 임금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으로 △모든 사원은 정규직 △정리해고 없음 △정년 70살 △능력별 대우와 성과주의 금지 같은 평등하면서도 유연성이 떨어지는 제도도 가지고 있다. 특히 능력별 대우나 성과주의를 금지하는 것은 일본 내 주류적 경향에 비춰보더라도 반(反)상식적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고성장과 함께 2009년에도 일본의 동종업계 평균보다 높은 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전기 스위치 분야에서는 거대 기업인 파나소닉을 누르고 일본 시장점유율 1위다.
기업의 주인은 ‘종업원’
왜 미라이공업은 종업원에게 ‘평등한, 그리고 상당한’ 혜택을 제공하는가? 일본형 기업의 특징인 ‘종업원 회사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회사 지분만 하더라도 공동 창업자인 야마다 아키오(79) 상담역(전 사장)과 고 시미즈 쇼하치 회장의 부인이 대주주로서 각각 17.4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기타 종업원 협의체가 약 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다른 지분들도 대부분 기후현과 나고야 지역의 금융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미라이공업의 제3자 주주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종업원 회사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지분 소유 비중이 아니라 종업원들의 주인의식이다. 미라이공업의 특이한 제도들은 바로 그 주인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종 복리 혜택뿐만 아니라 회사 내 제안 제도도 그 일환이다. 종업원 767명(2009년 기준) 규모인 미라이공업 제품의 80%는 특허와 실용신안을 통해 개발된 독자적인 제품으로, 그 대부분은 종업원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상용화한 것이다. 바로 회사의 사훈 ‘항상 생각하라’의 실천이다. 이러한 제안 루트를 마련하고 상용화함으로써 주인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더구나 주인의식의 이식을 위해, 설사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종업원을 차별해 대우하는 것은 철저히 부정한다. 미라이공업은 선풍기를 통해 승진자를 결정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승진한다고 해도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승진에 따라 책임은 늘어나지만, 70살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것은 똑같고, 임금도 철저하게 연공서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능력이 뛰어난 자만이 승진하게 된다면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은 종업원들의 주인의식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청년 시절 극단 감독이었던 창업자 야마다 아키오 사장은 자신의 연극 경험에서 “연극의 막이 올라가면 모든 것은 배우에게 맡겨야 한다. 주인공인 배우가 자신만의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동등하게 당근만 제공하면 그 연극은 성공하고, 관객은 감동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철학이 기업경영에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연극 무대의 배우가 곧 기업의 종업원이다.
이제는 상담역으로 물러난 야마다 사장은 회삿돈으로 구입한 이쑤시개까지도 재활용하는 지독한 구두쇠다. 자신이 주인인 회사의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실천이다. 본사 인력 250명이 사용하는 복사기가 한 대에 불과한데도 그에 따르는 불편을 종업원들이 감내하고 있다. 나중에 종업원 복지 혜택으로 되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독특한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많은 한국인들이 “사장”이라고 답할 것이며, 법리적 지식을 갖춘 사람의 경우 주식회사라면 “주주”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경우 기업은 “종업원의 것”이며, “종업원 혹은 사회 전체의 것이어야 한다”고 답하는 비율이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는 그 비율이 더 높았는데, 최근 조사에서도 “종업원의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의외로 높다. 물론 주주의식의 강화로 인해 주주라고 답하는 응답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종업원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이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미라이공업이다.
종신고용, 아직 붕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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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아키오 미라이공업 전 사장의 자서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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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 회사주의는 일본적 경영의 ‘3종 세트’(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의 하나인 종신고용제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근로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의식이 샘솟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미라이공업은 70살까지 임금을 지급하는 매우 긴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자인 야마다 사장도 70살이 되던 해에 상담역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 조언만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해 일본에서 종신고용제가 붕괴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히 비정규직이 증가해서 종신고용제가 붕괴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래 일본의 종신고용제도는 남성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적용됐다. 1958년 미국인 아베글렌은 보편적 종신고용이 미국과 대비되는 일본 기업의 특징이라고 주장했고, 그 후 일본 기업 전체가 종신고용을 제도화한 것처럼 인식됐다. 그렇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성과 청년층 프리타(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등은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당초부터 종신고용제가 전제로 삼고 있는 기술의 세대 간 이전의 대상도 되지 않았고, 종업원 회사주의와도 거리가 먼 계층이었다. 따라서 일본 종신고용제도의 존속 또는 붕괴 여부는 여성·청년 비정규직을 제외하고 따져봐야 한다. 이럴 경우 종신고용제의 혜택을 받는 비중은 비록 줄어들지만, 애초부터 남성 정규직 노동자에게 적용돼온 종신고용의 경향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둘째, 일본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80년대뿐만 아니라 장기 불황기인 1991년 이후에도 평균 근속연수는 계속 상승했다. 2006년 말 현재 남성은 평균 13.1년, 여성은 평균 8.6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그림> 참조). 종신고용제를 평균 근속연수로 판단하는 한, 일본에서는 종신고용제가 유지된다. 이러한 종신고용제를 철저히 고수하는 미라이공업은 일본형 경영이 유지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라이공업은 제품의 80%가 특허 상품이고 차별화 및 개량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한다는 제품 라인업 전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 상품의 개발 경험을 가진 인력, 즉 종업원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그들을 장기적으로 고용해야만 하는 구조다.
인본주의 경영의 힘
일본은 1991년 거품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을 겪었다. 이에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1995년 ‘신시대 일본적 경영’ 보고서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종신고용의 재검토와 성과주의 임금 및 승진제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실제 상당수 일본 기업들이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면서, 과거 일본적 경영의 3종 세트는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미라이공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일본인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제도들을 유지하면서 성장을 지속한다는 점은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부여하면서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것이다.
경영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미라이공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인본주의의 힘’에 있다. 미라이공업 사례는 자(資)가 본(本)이 되는 사회에서 인(人)이 본(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 일본식 경영의 3종 세트도 어찌 보면 인(人)을 기초로 한 가족 같은 노사 혹은 ‘노노’ 관계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러 외국 기업들이 성공적인 일본적 기업문화를 자국에 이식하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한 것도 인본주의 경영철학을 접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야마다 사장이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당근이 중요하지만, 종업원이 자신의 회사라는 의식을 스스로 갖도록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 비록 도요타와 같이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도 있지만…”이라고 말한 대목은 인본주의 부활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인본주의는 1991년 장기 불황 이후 새로운 성장 전략에 고심하는 일본 기업에 인식의 전환을 제공하고 있다. 1970~80년대 일본식 경영은 서구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그러나 장기 불황 이후 서구 경영학자들은 ‘일본 때리기’로 돌변했다. 일본식 경영이 찬사의 대상에서 비판 대상으로 갑자기 지목된 것이다. 여기저기서 일본적 경영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나 불황이 ‘장기화’된 것은 일본 기업의 경영 방식이 서구적 제도를 따라 급격하게 변동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 성과주의와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서구식 경영이 마치 전통적 일본식 경영을 대체할 구세주인 것처럼 여겨졌고, 이 과정에서 일본적 경영의 이념적 기초인 인본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내 회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쇠퇴하면서 일본 기업들의 강점인 ‘무결점 제품’ 생산 능력이 약화된 것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이 경제의 원동력
인본주의 경영의 가치는 일본에서 상당히 크고, 한국에서도 중요한 경영 지침이 될 것이다. 두 나라 기업의 제품 라인업이 고사양(High-end)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은 ‘캐치업’(Catch-up)형 공업화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선진국에서 들여온 기술과 원자재를 응용하는 기술 쪽에서 특장점을 발휘하면서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분야에서 모방하고 추격하면서 따라잡을 대상이 없어졌다. 고부가가치 제품과 기술을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제품 라인업에서도 고사양 제품을 출시해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제품 개발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사람만이 가능하다. 또 대량생산 체계에서와 달리 그런 제품 개발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 한국 기업도 일본 기업처럼 고사양 제품의 라인업을 더욱 늘려야 할 때다. 한국도 기업 내부에서 인본주의 이념에 기초한 각종 제도 설계들을 검토해야 한다.
인터넷 주소: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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