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정책현황과 과제(이신화, HK 제도 공동체 분과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1.11.30 Views 5529
정책보고서 명 : 국제기구정책현황과 과제
저자 : 이신화(HK 제도 공동체 분과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판 : 아산정책연구원
출판일 : 2011년 11월
요약
세계화의 심화와 복잡한 상호의존시대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가변성 및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그 추이에 대한 예측이 힘들다. 또한 군사, 정치, 경제적 영역으로만 이해되던 외교문제가 환경, 인권, 개발 등과 관련한 다양한 비전통안보이슈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정부뿐 아니라 국제기구와 지역기구, NGO와 초국가적 기업 등 행동주체도 다양해지면서 외교·안보문제의 ʻ포괄적(comprehensive)·다자적(multilateral) 접근ʼ이 중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한 국가 내에서 정부가 수행하는 기능을 국제적으로 행하는 글로벌거버넌스체제가 부상하게 되었다.
글로벌거버넌스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다자주의, 협력과 소통, 중재와 이해 조정 등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환경문제나 초국가적 질병퇴치, 예방외교, 인간안보와 같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갖고 중견국 외교 혹은 중견국 리더십을 추구해온 캐나다, 호주, 북구유럽국가들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제기구나 국제레짐의 역할도 부각되고 있는데, 국제기구의 가장 대표적이고 범세계적인 기구라 할 수 있는 유엔은 ʻ정부 없는 통치ʼ의 질서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주요 기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듯 유엔, IMF 등 국제기구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편, 역으로 이들 기존 국제기구들의 정당성과 효율성 문제 및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새로운 글로벌거버넌스를 이끌 대안적 기구나 체제의 수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각국은 국익의 극대화를 최고의 정책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는 다자외교정책이나 국제기구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국제기구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할 때 ʻ국제사회에 대한 기여ʼ와 ʻ국익제고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OECD 회원국이고 선진·신흥경제 협의체인 G20회원국으로 이미 중 강국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최고의 정보기술력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아직까지 중견국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찾는 노력을 강화해야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외교의 다변화, 다원화를 통해 외교지평을 넓히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내에서의 입지와 위상을 강화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즉 지구촌 주요 이슈들을 글로벌 어젠다화하고, 유엔의 개혁을 비롯한 중요한 국제기구들의 절차나 운영방식 등을 논의하는 데 있어 한국의 지분과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관련 이슈나 법적·제도적 절차 등에 대한 전문지식을 토대로 전략적 비전과 이행방안을 마련할국제기구정책을 수립하고 개발해야 한다.
한국의 국제기구정책은 크게 국제기구 참여 및 회원국활동, 국제기구진출, 국제기구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정부대표를 파견하고, 분담금 납부에 관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사국·의장국 선거나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 확대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이행은 지난 20년 동안, 특히 1991년 유엔가입을 계기로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소지가 있다.
첫째, 국제기구 전략 부분에 있어서는 국제행사유치 및 준비와 국제기구 유치 등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글로벌 이슈 현안에 대한 범정부 전략 및 대응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는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이 주도권과 오너십을 발휘할 수 있는 틈새이슈발굴과 틈새전략개발을 통해 국제사회와 유엔 내에서의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녹색성장, 개발협력,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등과 같이 중요한 글로벌 어젠다이면서 중견국가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다자외교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노력의 일례일 것이다.
둘째, 현재 우리는 분단국가로서 북한 문제를 관리하고 주요 국가와의 양자현안문제를 다루기 위해 한반도 중심의 외교를 소홀히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새로운 다자외교 패러다임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고 비전을 수립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중견국가로서 강대국들의 이해가 대립되는 이슈나 규범을 만드는 등의 측면에서 중재와 조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다른 중견국가들과의 연대 강화, 선후진국 간 가교 역할이나 진정한 중재자(honest broker) 역할을 통해 적극적 역할 발휘를 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국제기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다자외교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장기적인 외교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대외 원조나 PKO 파병 등 세계공헌 분야에 대한 투자 및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ʻ친구국가들ʼ을 많이 확보하는 ʻ우(友)테크ʼ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셋째, 국제기구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의 경우 실무 현안으로 업무가 집중되고 인력이 부족하며, 부서 내 다자외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다자업무 수행국들 간 업무중복 및 업무협의와 소통의 한계, 범정부차원에서 전략수립과 이행을 총괄할 기관이나 시스템이 없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진 통합적인 다자외교와 국제기구 전략을 수립하고 국제기구정책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조정을 위해, 무엇보다도 외교통상부 내 국제기구국 이외에도 다자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국들과의 긴밀한 업무협의와 소통 체제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교통상부 내에 다자외교 조정관을 중심으로 부서 간 긴밀한 업무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범정부적 차원에서도 기획재정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등 여러 부처들의 다자외교업무도 부처 내에서 뿐 아니라 부처 간 긴밀한 업무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모든 정부부처들은 국익추구의 측면에서 다자외교 이슈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상호 교환하고 협력방안을 논의하여 특정 이슈들에 대한 전문성 제고와 해결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처 내에 특정분야의 전문가들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 하여 인력풀제를 구성 및 운영하고, 필요시 부처 간에 효율적으로 인력을 수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외교전선에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각 부처의 다자외교 및 국제기구외교 관련한 현안문제, 비전, 목표, 추진방향 및 전략, 우선순위, 예산과 인력, 행정업무 등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립과 집행, 그리고 상호 인력교류와 정보교환, 공동연구과제 수행 등 범정부적 차원의 보완·협력관계를 제고하여 국제기구외교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총괄하기 위해 다자외교와 국제기구외교를 총괄할 ʻ총리실 직속 컨트롤타워ʼ 혹은 사령탑을 만들고,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업무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넷째, 국제기구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때 정부 주도의 성격을 벗어난 민간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하고 정보 공유 및 정책 마련을 상호 협력하여 진행해야 한다. 특히 대중을 계도하고 정책가들에게 비전 및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인식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ʻ다자외교 전문가 그룹(가칭)ʼ을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다자외교와 국제기구외교에 대한 대 국민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다자외교도 엄연히 국가 간의 관계이다. 예를 들어, 다국적군 파병 등을 둘러싼 국내에서의 논란을 다른 나라가 이해해주거나 그 해결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국익을 위한 외교적 결정과 시행과정에 범국민적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며 언론도 즉각적이고 단순화된 기사를 보도하는 것을 자제하는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정부는 대외관계, 국내제도, 국민여론의 상호불가분의 연관성을 숙지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다자외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글로벌이슈나 국제기구 외교에 있어 한국 국민들의 역량과 동정심, 그리고 이해와 지지를 잘 이끌어내야 한다. 비록 국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아 소홀히 여겼던 지구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과 참여를 확대할 방안을 마련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보고서 원문 : http://www.asaninst.org/publications/board_read.php?num=477&type=proceeding&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