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만보산 사건과 한중관계
2011.08.23 5227
2011년 6월 학술회의 - 만보산 사건 8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일시 : 2011년 6월 17일(금), 13:00~18:00
장소 : 대우재단빌딩 7층 제1세미나실
본 연구소 비교사센터에서는 2011년 6월 17일 서울역 대우재단빌딩 7층 제1세미나실에서 “만보산 사건과 한중관계”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최근 학계에서는 일국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역사 연구와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사 폐단을 반성하면서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한중관계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현존하는 역사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 역사교육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기반 마련을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최근 새로운 시각으로 한중관계사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중국에서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진 한중관계와 관련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한국을 중심으로 주로 중국의 역사왜곡을 구명하는 작업에 치중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사진 : 만보산사건 기념비.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연구위원 제공]
잘 알다시피 동북공정에 나타나는 중국 측의 ‘무리’한 역사 해석의 배경에는 전통적인 중화주의와 패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중화주의와 패권주의는 동아시아 국제관계 속에서 존속 확대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전쟁’이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근거의 틀을 제시하고, 나아가 장래 양국 간의 바람직한 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역사의 정확한 상호인식이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 활동했던 중국인이나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국인들이 양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직까지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한국사 영역에서 한중관계사를 새로운 시각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 가운데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그 전제로 하면서도 한국의 입장에서 반성할 필요가 있는 역사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이 만보산사건과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중국인 배척운동이다.
2011년은 만보산사건이 발생한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80년 전인 1931년 7월 1일, 중국농민 약 400명이 봉기하여 조선인이 개척한 관개수로를 매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조선인 농민, 일본 영사관 경찰과 중국인 지주, 주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때 일본경찰은 중국인 농민에게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많은 피해를 냈으며, 중국 정부측은 이에 강경하게 대항하였으나 일본은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매한 태도를 취하였다. 조선 내 각 신문이 ‘동족을 사랑하고 동정’하는 조선인의 민족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인천을 필두로 경성 ·원산 ·평양 등 각지에서 중국인 배척운동이 일어났으며, 평양에서는 대낮에 중국인 상점과 가옥을 파괴하고 구타 학살하는 사건이 며칠간 계속되는 등 잔인한 폭동으로 확산되었다.
만보산사건의 본질은 만주에 세력을 형성한 중국 민족운동 세력과 조선인 민족운동 세력의 반일 공동전선투쟁에 대해 이를 분열시키려는 일제의 치밀한 음모였으며, 이를 만주침략과 대륙침탈의 발판으로 삼고 국제적으로는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하려는 술책이었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다. 물론 이것은 기존연구에서 이미 많이 밝혀졌지만 이 사건 이후 조선인의 중국인에 대한 배타의식이 처음으로 대중 차원에서 표출되었으며 이것이 상호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룬 연구성과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한국사 연구자와 중국사 연구자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성과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일제시기는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한중관계에는 외교적 현안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인의 만주이주와 중국인의 조선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양 민족간 접촉이 증대하면서 갈등 가능성은 증대했다. 특히 1930년대 한중관계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책, 중국에 대한 침략과 연관되어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연결되면서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특정 사건에 대한 구성원의 여론이나 반응이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만보산사건과 그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한중관계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주제라 할 수 있다.
본 학술회의는 총 3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먼저 1부에서는 ‘만보산사건과 조선인, 중국인의 상호인식’을 주제로 △만보산사건과 중국인의 조선인식 △만보산사건과 조선인의 중국인식 등의 발표 및 토론이 이루어졌다. 2부에서는 ‘만보산사건 이후 재만 조선인과 재조 중국인’을 주제로 △만보산사건 직후 재만 한인의 동향과 한중관계의 한 단면 △萬寶山사건 직후 華僑排斥事件에 대한 日帝의 대응에 대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됐다. 마지막 3부에서는 아주대의 김태승 선생이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자국․자민족 중심주의에 입각한 역사관과 대외관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상호 간의 국제관계나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것은 최근 불거졌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아시아 각국의 ‘영토분쟁’과 ‘무역분쟁’, ‘북핵문제’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본 학술회의는 만보산사건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상호인식을 비교하고 재만 조선인 문제와 재조 중국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룸으로써 일국사적의 관점을 넘어선 보다 넓은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역사적 실체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참석자들은 외부에 대한 부조리함과 폭력성, 억압성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내부의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성찰하고 자기비판과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취지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였다. 본 학술회의는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바람직한 역사연구가 진행되는 데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