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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저

‘조선군인’ 가네코 데이이치(金子定一)와 대아시아주의운동(이형식 HK교수)

2018.07.05 Views 1033

-제목: ‘조선군인’ 가네코 데이이치(金子定一)와 대아시아주의운동

-저자 : 이형식(HK교수)

-출판정보 : 역사와 담론 第84輯, 2017.10
 

-논문초록

본고에서는 ‘지나통’, ‘조선통’(‘조선군인’), 대아시아주의자로서 활약한 가네코 데이이치의 행동과 사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가네코는 만주사변 직전에 조선에 부임해서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관동군과 조선군의 연락장교로 봉천에 파견되어 재만조선인 구제를 구실로 전선확대를 꾀하는 한편 재만조선인문제에 깊이 관여하였다. 가네코는 만주에서의 항일운동을 막고 치안을 확보하기 위한 재만조선인대책의 일환으로 ‘안전농촌’ 건설하고, 만몽을 중국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네코의 만몽영유론은 권익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만몽, 조선, 일본이 동일 종족(투란민족)이라는 우랄 · 알타이민족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대아시아주의자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만주국이 건국된 후에 20사단 참모로 조선에 다시 돌아온 가네코는 국민협회, 동민회, 재향군인회, 조선교육회, 경찰관강습소 등이 주최하는 각종 강연회의 연사로 활약하는 한편, 신문, 잡지 기고를 통해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옹호하고, 만주국 건국을 지지했다. 국제연맹을 백인의 이익방호기관, 동양침략을 위한 기관이라고 맹렬히 비판하며 국제연맹에서 탈퇴할 것을 역설했다. 이러한 사상운동을 통해서 가네코는 조선에 대아시아주의를 전파하였고, 1934년 조선대아세아협회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가네코는 아시아 제 민족(투란민족)의 지연적, 혈연적,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면서 天孫民族인 大和民族을 대종가로 한 ‘一家的 大民族主義’, ‘동아대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가네코의 대아시아주의는 최남선의 ‘불함문화권’과 공명하면서 점차 일부 ‘친일’ 조선인들에게 침투되어갔다. 가네코가 뿌린 대아시아주의운동의 씨앗은 1939년 여름의 천진조계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조선에서의 反英운동으로 승화해나갔던 것이다.
한편 가네코의 조선인식 및 민족관은 자연스럽게 제국주의적인 침략 논리로 이어졌다. 즉 가네코는 일본민족대륙기원설을 채용하면서 만주사변 이후의 대륙침략을 일본민족의 고향으로의 귀향활동, 즉 ‘일본민족의 대륙환원’으로 정당화했던 것이다.

 

本稿では「支那通」、「朝鮮通」や大アジア主義者として活躍した金子定一の行動と思想を明らかにした。金子は満州事変直前に朝鮮に赴任して満州事変が勃発するとすぐに関東軍と朝鮮軍の連絡将校として奉天に派遣され、在満朝鮮人救済をかこつけて戦線拡大を謀る一方、在満朝鮮人問題に深く関与した。金子は在満朝鮮人対策の一環として「安全農村」を建設し、満蒙を中国から分離すべきであると出張した。金子の満蒙1有論は権益的観点のみならず満蒙、朝鮮、日本が同じ種族(トゥラン民族)とういう民族観に基づいていたことが大きな特徴である。
満州国建国直後に20師団参謀として朝鮮に戻って来た金子は国民協会、同民会、在郷軍人会、朝鮮教育会、警察官講習所などが主催する各種講演会の演説者として活躍する一方、新聞、雑誌寄稿を通じて日本の満州侵略を擁護して、満州国建国を支持した。また国際連盟を白人の利益防護機関、東洋侵略のための機関だと猛烈に批判して国際連盟から脱退することを主張した。このような思想運動を通じて金子は朝鮮に大アジア主義を伝播し、1934年朝鮮大亜細亜協会設立に重要な役割を担当した。また、金子はアジア諸民族(トゥラン民族)の遅延的、血縁的、文化的同質性を強調して天孫民族である大和民族を大宗家にした「一家的大民族主義」、「東亜大民族主義」を主張した。このような金子の大亜細亜主義は崔南善の「不咸文化論」と共鳴しながら、漸次親日朝鮮人に浸透していた。金子が播いた大アジア主義運動の種は1939年夏の天津疎開事件をきっかけで触発された朝鮮での反英運動に発展していた。
このような金子の朝鮮認識、民族観は自然に帝国主義的な侵略論理につながった。日本民族大陸起源説を採用して満州事変以後の大陸侵略を日本民族の故郷での帰郷活動、すなわち「日本民族の大陸還元」として正当化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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